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리 캐니언 호 좌초 사고 (문단 편집) == 좌초 == [[1967년]] [[2월 19일]] [[쿠웨이트]]에서 원유를 만재하고 출항한 토리 캐니언 호는 희망봉을 돌아 3월 14일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한 뒤 바로 영국의 밀퍼드 헤븐[* [[아일랜드 해]]에 접한 [[웨일스]] 지방 항구도시]으로 향했다.[* [[수에즈 운하]]는 같은 해 6월 [[제3차 중동전쟁]] 발발과 함께 폐쇄되었지만 이전부터 긴장이 고조되어서 운하 항행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희망봉]] 루트를 선택하는 선박들이 많았다.] 3월 18일 저녁무렵 토리 캐니언 호는 란즈엔드곶 서쪽 해역으로 진입하려고 했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토리 캐니언 호는 거센 조류로 인해 예정항로보다 훨씬 동쪽으로 밀려나 연안에 근접했다. 배가 연안으로 들어오면서 수많은 소형 선박들(주로 어선)이 등장했고 항해사들은 충돌 회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토리 캐니언 호는 예정된 항해 일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다. 선장 Pastrengo Rugiati는 시간이 늦어지자 초조해졌다. 사실 항로를 이탈했어도 다시 원래 항로로 복귀하기는 어렵지 않으므로 천천히 하면 되었지만 토리 캐니언 호의 진로 앞에는 악명 높은 실리 제도의 세븐 스톤스 리프가 있었는데 18세기 초에 영국 해군이 이곳에서 집단 좌초하는 [[실리 영국 해군 참사]]로 2천여 명에 달하는 승조원들이 수장된 바 있었다. 즉, 토리 캐니언 호는 속도를 유지한 채 변침하지 못하고 암초를 피하기 위해 급히 속도를 줄인 다음 변침해야 했다. 당연히 늦어진 항해 일정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장은 조바심에 못 이겨 감속도 변침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세븐 스톤스 리프'''를 돌파하는 항로를 선택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문제는 선장이나 항해사들이나 이 지역에 대해 말만 들었지 실제 위험도는 몰랐다는 것이다. 이 탓에 토리 캐니언 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속도인 15.75노트로 암초지대로 돌진했다. 오후 8시 토니 캐니언 호가 속도도 줄이지 않고 들어오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실리 제도의 등대는 경악했다. 그래서 즉시 조명을 비추고 신호탄을 발사하면서 필사적으로 배를 멈추려고 했으나 선장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이런 만용의 결과는 몇 분 지나지 않아 토리 캐니언 호가 세븐 스톤스 리프 중 Pollard 's Rock에 정면 충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